핵개인의 시대, 아무도 말하지 않는 리더십의 이면
2편. 리더십에 위기가 찾아온 이유
사람일까 상황일까?
지난 글에서 지금 리더십 또는 리더라는 포지션에는 진짜 위기가 찾아온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저는 리더가 존중받지 못하고, 리더되기를 꺼려하는 리더십의 위기 그 원인이 궁금해졌습니다.
리더의 문제일까요, 구성원의 문제일까요, 리더십 자체가 매력이 없어진 것 일까요. 아니면 제4의 변수인 환경 요인일까요?
대개 어떤 일의 원인은 복합적입니다. 역사를 바꾼 사건이나 희대의 발명, 굵직한 시대적 변화 모두 한 가지 이유만으로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공중파 TV의 침체가 유튜브 때문만은 아니고, BTS의 인기가 단지 그들의 음악에서만 비롯되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다만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트리거가 있고 그게 전체인듯 지목되어 부풀려질 뿐입니다.
1. 준비되지 않은 리더의 등장
저의 첫 회사 팀장님은 22년차였고, 전사 최연소 팀장이신 두 번째 팀장님은 18년차였습니다.
그 회사는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고, 회사만큼 구성원의 평균 연령, 평균 근속도 높았습니다. 현재 재직중인 업력 14년차 회사의 최연소 팀장님은 총 경력 7년, 서른살입니다.
시간이 실력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경험과 고민의 양’이 ‘결과의 개선 확률’을 높인다는 것 또한 믿습니다.
2. 새로운 사회적 현상 : 쉬운 이직
앞서 언급한 100년 된 저의 첫 직장은 재직 당시에 전 직원의 80%가 공채 입사자였고, 제가 있던 팀에서만 해도 2명의 정년 퇴직자를 배출했습니다.
고용이 유연한 미국의 근로자는 평균 13번 이직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저와 제 동료들이 다니는 IT기업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4년을 넘지 않습니다.
한 곳에서 일어나면 ‘사건’이지만, 여러 곳에서 일어나면 ‘현상’이 됩니다.
짧은 근속, 잦은 이직이 IT기업을 중심으로 한 일시적인 사건이라고 하기에 IT 기술이 촉발한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전환은 3~4년 주기 이직을 ‘현상’으로 고착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만큼 개인은 한 회사와 리더만 바라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3. 새로운 사회적 현상 : 긱워크, 프리랜서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비혼’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익숙해 진지도 20여년이 지났습니다. 저출산은 세트로 딸려 옵니다. 정확히 세 집 중 한 집은 1인 가구입니다. 자신 외에 가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사람이 없으니 몸이 가볍습니다. 결혼을 한 경우에도 맞벌이로 시작합니다.
우리네 아버지처럼 참을 인(忍)자를 세 개씩이나 지니고 다니며 화병을 키우지 않고, ‘당일 퇴사’ 신공을 펼치기 쉬운 환경입니다.
출퇴근하는 직장이 아니더라도 유튜버, 블로거, 재택근무 프리랜서, 그 밖에 나의 전문성을 활용해 돈을 벌 수 있는 사이드 잡 기회가 널려 있습니다.
물론 기회가 있다는 것일 뿐, 누구나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특별한 전문성이 없더라도 당장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는 플랫폼 일자리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임시직 일자리를 일컫는 긱 워크(gig work)라는 말까지 흔히 쓰이고 있습니다.
이제 누군가는 회사와 리더에 대한 절대적인 가치가 느슨해지기 시작했고, ‘23년 말부터 챗GPT를 시작으로 AI가 본격적으로 현실화되며 일자리 전쟁이 격화되면 이 기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4. 가치관의 변화 : 조용한 퇴직
직장인에게 단 하나의 성공 척도였던 승진, 팀장, 임원에 대한 인식에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승진은 연봉 좀 올려주고 그 이상 부려먹는 착취, 팀장은 혜택 없고 시달리는 자리, 임원은 임시 직원의 준말이자, 곧 나가야 하는 경력의 종착역으로.
30여년 전에는 현재를 즐겨라 Carpe Diem이 그렇게 유행하더니 마케팅 구호로 찰떡인 웰빙(well-being)과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거쳐, 인생 한 번 뿐이니 즐기라는 YOLO(You Only Live Once)로 이어집니다.
급기야 코로나 기간에는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이라는 밈이 퍼지기 시작해 현재진행형으로 전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평생 벌어도 어차피 집 한 채 못사는데 쓰면서 살자/쉬면서 살자/받는 만큼만 일하자가 된 것입니다. 적게 일하고, 적게 스트레스 받고, 적게 벌기를 추종하는 이에게 ‘리더 역할’은 배척해야 할 1순위 주적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코로나 이후 금리 인상을 통한 양적 긴축 등의 여파로 세계는 경기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기업들은 이를 빌미로 조용한 해고(Quiet Cutting)를 감행하며 맞불을 놓고 있습니다. 여기에 ‘23년 말 챗 GTP, 테슬라 로봇 등이 속속 발표되며 당분간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쭉 기업 우위의 채용 시장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Quiet Quitting은 기업 입장에서 선을 넘은 도발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Carpe Diem, YOLO 같은 멋들어진 구호들은 이제 찬란했던 인재전쟁의 시절, 화양연화의 상징으로 역사 속에 박제될 것 같습니다)
5. 가치관의 변화 : 새로운 교주 - Mr. Money
사회와 문화가 발전하면 세속적인 가치보다는 상대적으로 수준 높아 보이는 가치에 더 높은 비중을 두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학벌이나 직업 등에 집중돼 있던 가치 비중이 2000년대 들어 오히려 돈이나 외모 등 세속적인 가치 쪽으로 쏠리는 느낌입니다.
경제 이슈 앞에 뜨겁던 정치 이슈마저 소멸돼 가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기업가들에게도 팬덤이 생기기 시작했고, ‘사’자 직업이 아니어도 부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많아졌습니다. 운동 선수, 연예인, 유튜버, 프로게이머, 비트코이너(?)까지.
돈이 곧 정답이자, 권력이며, 목표인 세상에 그 길을 가로막는 부담스러운 리더 타이틀은 의미 없어졌습니다. 세상은 다원화됐고, 그 세계의 현재 1위는 ‘Mr. Money’입니다.
Leader dis-respect 패러다임, 각자도생 시대정신
교실에서 선생님이 존경을 잃었듯, 이런 이유들이 한데로 모아져, 리더에 대한 리스펙트도 희미해져 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이 상황을 ‘각자도생’의 시대정신이 가져온 필연적 결과로 정리합니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세대에게 리더 포지션은 무게를 감내할 ‘황금 왕관’이 아닌 발목의 ‘쇠붙이 족쇄’쯤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오래된 담당자가 아직 답을 찾지 못한 ‘5가지 리더십 의문’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 고민의 양이 발전의 확률을 높인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why’를 프로파일링합니다.
(전) 쿠팡 Culture & Value팀
(전) 두산인프라코어 HRD팀 / 두산Way팀
(전) 삼양홀딩스 HRD팀 / 조직문화T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