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인의 시대, 아무도 말하지 않는 리더십의 이면 | 1편. 리더 기피의 시대

리더십

핵개인의 시대, 아무도 말하지 않는 리더십의 이면

1편. 리더 기피의 시대

승진해서 관리자가 된다는 건 누군가에겐 10년, 20년을 달려온 이유이자 목표이고, 조직에서 10~20% 안에 드는 핵심적인 위치의 인재로 인정받았다는 징표입니다.

그런데 2024년의 승진 풍경은 우리가 익히 알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승진의 도파민에 취하게 되는 1,2주 동안 뿌듯하고 기쁘지만 팀장 명함을 갖게 되는 건 이제 온갖 골치 아프고 부담스러운 일을 떠맡게 된다는 것이고, 1%의 확률을 뚫고 임원 승진 축하를 받게 되면 커리어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언제든 ‘계약 해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관리 역량보다 업무 전문성을 우선시하는 개발자 직군을 중심으로 리더 직책을 기피하는 일은 일반화된지 오래입니다. ‘23년 1,1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잡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는 임원 승진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시대를 초월해도 변하지 않는 인류 보편의 생각이나 감정이 있습니다.

만오천년 전에 그려진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에서도, 100여년전 구한말에도, 21세기에도 어른들은 쯧쯧 혀를 차며 요즘 애들은 버릇없어 큰 일이라 합니다.

경제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곧 세상이 망할 것 같은 ‘역대급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리고 20여년간 리더십 개발 업무를 담당하며 옆에서 바라본 리더들은 항상 힘들고/피곤하고/외롭기만 합니다.

그래도 지금에 비하면 20년 전의 리더들은 할 맛 나는 역할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켜주면 해볼만한 ‘당근’의 목록이 열손가락을 가득 채웁니다. 오래된 기억을 빌리자면

– 팀장만 돼도 요새처럼 파티션으로 둘러싸인 널찍한 책상 앞에 앉아
– 실무는 한참 전에 손 뗀 채 결재 도장찍는 걸 주업으로 삼고
– 오전 시간은 주로 조중동 종이 신문을 뒤적이며 보냈습니다. 가끔은 매경 이코노미스트도…
– 확률은 낮지만 임원 승진 후보 노미네이트 기회에
– 챌린지는 언감생심, 막강했던 평가권과 인사권
– 존경은 몰라도 존중은 받았던 권위
– 하루 한 두번의 울화통을 진정시켜줄 만한 직책 수당에
– 웬만해선 한도까지 쓸 일 없는 법인카드에
– 술마신 다음날엔 출근 도장 찍고 사우나행
– 시간과 메뉴와 2차 여부를 눈치보지 않고 결정할 수 있는 중앙집권적인 회식까지
– 팀원들은 출근 시간에 늦을 것 같으면 지하철역부터 뛰었고, 싫은 얘기 좀 해도 일단은 알겠다며 돌아섰습니다. 질책 한마디에 회사를 떠나는 사람은 드물었고, 농담에 대한 수용의 역치도 높았습니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들 – X세대는 그것을 ‘낭만’이라 부르고, Z세대는 ‘적폐’와 ‘라떼(는 말이지)’라며 몸서리칩니다.

조금은 더 사람 사는 느낌이었고 정이 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철저히 ‘을’의 입장인 신입사원 시절이었는데도 말이죠. 어쩌면 다들 ‘나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 올라가 그런 호사를 누리고 말겠다’는 야망에 기반한 거대한 암묵적 동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리더십

사무실 안의 3D 직업,
그 이름은 L-E-A-D-E-R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희곡 ‘헨리4세’에서 ‘왕관을 쓰려는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며 명예와 권력에는 부담과 책임이 따름을 일갈했습니다. 20년 동안 리더십 교육을 담당하고, 그 중 5년 정도 리더 역할을 수행해보니 그 무게의 원인을 5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리더는 어렵고 힘듭니다.

많은 일에 관여해야 하고 수시로 의미있는 피드백을 내놓아야 하며, 최적의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건 물론이구요.

기본 역할은 사람관리, 성과관리, 조직관리, 예산관리에 자기관리까지. 그리고 요즘엔 ‘실무 팀장’이라는 이름으로 굵직한 프로젝트 한두개에는 이름을 올려야 밥값한다 소리 듣습니다.

엄청난 정보를 공유받거나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직책 수당도 박하거나 없는 회사가 많고, 팀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전문가 트랙의 대우도 좋아지고 있어 박탈감/상실감/회의감은 커져만 갑니다.

2. 리더는 외롭습니다.

큰 부담 속에 무대 한 가운데에 서 있는데, 막이 내리고 하루가 끝났을 때 위로받고 고충을 나눌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팀원과는 긴밀한 얘기를 나누는데 한계가 있고, 동료 리더는 돌아서면 적이 됩니다. 상사와 한 두 번의 고민 상담은 가능하겠지만 반복해서 평가권자에게 나의 약한 모습을 보게 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화는 늘고 속은 썩어 갑니다.

3. 리더는 끼어 있습니다.

위로는 경영진, 아래로는 팀원들이 모두 팀장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때로 결정은 위에서 하고 과정, 배경, 목적 공유없이 실행을 종용합니다. ‘우리 팀장은 맥락과 배경 설명없이 일 시키는 MZ가 극혐하는 리더’라는 낙인과 함께 화살이 날아듭니다. 그 리더가 지금 죽는다면 사인은 ‘압사’일 것입니다.

4. 리더에게는 높은 기대치가 요구 됩니다.

경험과 전문성에 인성까지 훌륭한 롤 모델이 되어야 하고, 포커페이스이며 희생정신도 발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제는 치어리더, 오늘은 카리스마를 기대합니다. 하루에 열 두 번 ‘완벽’이란 이름의 벽이 느껴집니다.

5. 전장에 나가는데 무기는 주지 않고 개인기로 버티라고 합니다. 

타고난 리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리더는 리더십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뭐라도 해보려고 리더십 책을 펼치면 너무 다른 세상 얘기라 와 닿지가 않습니다. 리더십 교육이라곤 신임 팀장 때 사흘 받은 게 전부인데, 돌아오는 차에서 이미 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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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어른, 어쩌다 리더

다들 어쩌다 어른이 되고, 어쩌다 부모가 되듯이 그들은 ‘어쩌다 리더’가 됐습니다.

어른이나 부모는 미리 준비하고 조금 부족해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간혹 실수해도 바로잡으면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리더는 초기 한 두 달의 허니문 기간을 제외하면, 실전에서 매순간 자신의 실력과 존재를 확인받아야 합니다.

리더의 자리는 증명하는 자리이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험수당도 못 받는 3D(Dirty, Difficult, Dangerous) 직업이 바로 리더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90년대에 선생님들은 아직 존경의 대상이었고, 꽤 높은 권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이런 존경심과 권위가 쉽게 사그라들거라 상상하긴 어려웠는데, 30여년이 지난 지금의 교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이 상황의 데쟈뷰처럼 지금 들려오는 ‘리더 위기설’은 엄살이거나 일시적 현상, 또는 ‘요즘 애들 버릇없어’ 류의 투정 이상의 꽤나 묵직한 현실처럼 들립니다.

다음 글에서는 리더십에 묵직한 위기가 찾아온 이유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 有에서 new로 develop하는 실용주의 Creator
- 고민의 양이 발전의 확률을 높인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why’를 프로파일링합니다.
임정균
임정균
위대한상상(요기요) Learning & Value팀장, 21년차 HR
(전) 쿠팡 Culture & Value팀
(전) 두산인프라코어 HRD팀 / 두산Way팀
(전) 삼양홀딩스 HRD팀 / 조직문화T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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